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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묘소 테러사건

  • 주제설명
  • 기록물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원인

  •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노린 폭탄 테러가 아웅산 묘소에서 발생했다. 북한 비밀공작요원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살해하여 남한 정부를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 고성능 폭약을 설치·폭파하여 집단 암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이 폭발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김재익 경제담당 대통령 수석비서관 등 17명이 순직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후 동남아 순방의 첫 방문지를 미얀마(버마)로 선택했다. 미얀마는 제3세계 국가였지만 북한 및 공산권과 가까운 나라였다. 전두환은 제3세계를 포섭하려 했고, 그 중 미얀마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먼저 방문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지득한 북한 당국은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때 미리 설치한 폭발물을 원격조정장치로 폭파시켜 일거에 대통령 일행을 모두 살해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사건발생 당일, 전두환 대통령은 갑작스런 사정으로 참배예정시간에 다소 늦게 되었고, 나머지 일행은 예정된 시각에 도착하여 대통령을 기다리며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에 테러범들은 대통령 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참배를 시작하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미리 묘소 지붕 위에 설치해놓은 폭발물을 원격조정장치로 폭파시켰던 것이다.

내용

  • 1. 시기와 장소

     1983년 10월 9일 현지시간 10시 25분, 아웅산 묘소

    2. 관련인물과 사건전개

     가. 관련인물
     * 테러요원: 북한군 소좌(소령) 진용진, 상위(대위) 강민철, 상위(대위) 김치오
     * 피해자: 정부요인과 경호요원 등 순직 17명, 중경상 15명, 버마인 4명 사망, 32명 부상. 

     나. 사건전개
     북한인민군 제771부대장 소장 강창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한국 대통령을 버마 방문 시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부대는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국 직속의 저격여단(병력-3,470명)으로서 개성에 위치한 부대였다. 동 부대장 강창수는 북한군 소좌 진용진(조장), 상위 강민철(조원), 상위 김치오(조원)에게 전두환 대통령 암살임무를 하달했다.

     이들은 1983년 9월 9일 동건애국호(5.378톤, 북한 남포항 선적) 편으로 북한 옹진항을 출항하여 동년 9월 22일~23일경에 버마 랑군에 도착했다. 이 배는 원래 화물선이었으나 개조하여 고성능 무선장비·기관포·소총·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주로 간첩호송이나 전략물자 수송을 하면서 때로는 밀수품을 실어 나르기도 한 선박이었다.

     테러대원 3명은 현지에 파견된 2명의 안내원에 의하여 랑군 주재 북한대사관 송창휘 대사, 3등서기관 김웅삼, 손기훈이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테러리스트들은 폭파에 필요한 폭발물을 인계받았다.

     테러범 3명은 비밀리에 테러공작을 하기 위해 사고 3일전에 그동안 머물렀던 북한외교관 집을 나와 범행지인 쉐다곤공원 아웅산 묘지 주위를 사전에 답사했다. 이들은 10월 7일 새벽 02:00경 비밀리에 아웅산 묘지 지붕 위에다 2개의 폭탄을 설치했다. 8일에는 공원에서 자고, 9일 아침 한국의 국빈들이 자동차로 아웅산 묘지에 도착한 후 도열하여 대통령 영접을 위한 의식을 연습하는 것을 실제 참배로 착각하고, 인근의 위자야(wisaya)극장 근처에서 원격조정장치를 활용하여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을 폭파시켰다. 이 폭파로 상기한 국빈과 경호원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으며, 버마인도 4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당했다.

     폭파 후 조장은 뿔뿔이 흩어져 사전에 모의한 집결지로 모일 것과 절대로 전에 숙박했던 북한외교관의 집으로 다시 가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들은 사건 3일 후인 10월 12일에 북한으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폭파 후 신속히 수사가 시작된 관계로 공원 넘어 강어귀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배가 오지 않은 관계로 사건 다음날 모두 버마경찰에 체포되었다.

     3. 의의와 파장
     미얀마 당국의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진용진 소좌, 강민철 상위, 김치오 상위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미얀마 정부는 이 사건의 수사를 매듭지으면서 11월 4일 낮 1시를 기해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한편, 양곤에 있는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그 뒤 12월 9일 양곤 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는 이들 테러범들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이어서 코스타리카·코로렌군도·사모아 등이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한국 정부는 국민장(國民葬) 직후인 10월 14일 정국 수습의 일환으로 김상협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진의종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 사건은 김정일의 등장과 더불어 대남한 모험주의에 입각한 북한의 국가지원테러였다.  이 시기 북한은 남한과의 체제우월성 경쟁에서 패북(敗北)을 의식하고 남한을 극도의 정치적·경제적 혼란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테러 대상을 남한의 국가원수로 지목한 것이었다.

참고자료

  • 최윤수,〈국가지원 테러리즘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 논문 동국대 대학원, 1991

     

집필자

  • 전대양(관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일

  •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일

  • 2007.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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