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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병무

남북고위급회담/군비통제회담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88년 12월 28일 강영훈 국무총리가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이어 북한 정무원 총리 연형묵에게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했음.

배경

북한은 1948년 3월 남북 제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외국 군대의 즉각적인 동시철수 제의를 시발로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 250여 차례에 걸쳐 대남 군비통제 제안을 해왔다. 그들의 제안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반도 휴전체제와 연계하여 주한 미군의 철수가 주류를 이루었고, 1980년대 이후 주한미군 철수 및 병력 10만으로 감축 등 3자(남-북한, 미국) 회담 틀 속에서 종합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한국 정부는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여 전쟁발생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상호군사력의 운용을 조정 및 통제하여 적정 수준을 유지하여 남북평화공존체제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정책 방향에 따라 신뢰구축, 군비제한, 군비축소의 단계적 접근을 군비통제정책으로 유지해왔다.

내용
가. 남북고위급 회담 제의
1988년 12월 28일 강영훈 국무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이어 북한 정무원 총리 연형묵에게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의했는데, 북한측이 이를 수락함으로서 남북간에 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쌍방은 1989년 2월 8일부터 1990년 7월 26일까지 본 회담 개최를 위한 8차례의 예비회담과 2차례의 실무대표 접촉을 가진 끝에「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라는 의제와 2명 이내의 군사대표를 포함한 대표단 구성문제 등 회담절차에 합의했다. 이로써 분단 45년만에 남북대표가 만나 군비통제문제를 토의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이 열렸다.


나. 남북고위급 회담의 경과
제1차 회담은 1990년 9월 4일부터 7일까지 서울에서, 제2차 회담은 그해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군사대표로서 한국측은 합참의장 정호근 대장이, 북한측은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광진 대장이 참석했다. 남북 쌍방은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1992. 2. 18~21)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발효시키고 이들의 구체적 이행과 대책협의를 위한 정치, 군사, 교류.협력의 3개 분과위원회 및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제7차와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연락사무소의 설치와 화해, 군사, 경제, 사회.문화 분야의 4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는 한편, 기본합의서의 이행 준수에 관한 구체적 대책을 담고 있는 화해, 불가침 및 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부속합의서를 채택했다.


다. 군비통제 대화의 중단
그러나 얼마 후 비핵화공동선언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핵통제 공동위원회에서 당시 국제적 이슈가 되던 북핵개발 의혹과 관련하여 한국측이 상호사찰을 제안하자 북한은 군사기지 사찰을 거부하면서 협상을 지연하다가 1992년 11월 대화 자체를 거부하여 남북간의 군비통제를 위한 대화는 중단되었다.
참고자료

국방군사연구소,《국방정책변천사》, 군인공제회, 1995.
국방군사연구소,《건군50년사》, 서울인쇄공업협동조합, 1996.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사》4, 군인공제회, 2002.

집필자
백기인(원광대 군사학부 외래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