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서울올림픽 관련 IOC중재 남북 체육회담을 1985년 10월부터 1987년 7월 사이에 총 4회에 걸쳐 개최하였다.
1981년 9월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제24회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자 북한은 ‘한반도에 긴장이 상존하고 있으며 올림픽경기의 서울 개최는 한반도의 분단 고정화를 초래하고, 이는 올림픽의 기본 이념과도 배치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서울이 개최지로 부적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IOC위원장 사라만치가 IOC주재하의 남북체육회담 개최를 제기하고,
이후 IOC는 남북한과 협의를 거쳐 8월 1일 IOC주재하의 남북 체육회담을 로잔느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1984년 5월의 남북 체육회담 이후 중단된 남북 체육계의 접촉이 1년 반 만에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1차 회담은 1985년 10월 8-9일 IOC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느에서 사만란치 IOC위원장 주재 하에 비공개로 개최되었다. 이 기간 동안 IOC와 남북한올림픽위원회 대표간의 3자 합동회의가 2회, I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간 개별회의 2회, 그리고 IOC와 북한올림픽위원회간 개별회의가 2회 진행되었다. 그러나 북측이 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절반씩 진행하고 남북한은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공동주최안’을 제시하고 이를 고집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제2차 회담은 1986년 1월 8-9일에 진행되었다. 이 회담은 제24회 올림픽대회 조직권한을 서울시에 부여한 1981년 IOC총회 결정에 위배되는 사항이 더 이상 회담의제가 될 수 없음을 전제로,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 문제 협의·북한에서 개최 가능한 종목의 협의·문화행사에 북측이 참가하는 문제 협의 등 IOC가 채택한 6개항의 회담의제에 따라 진행되었다. 북측은 경기종목을 절반씩 나누어 공동주최해야한다는 주장에서는 다소 후퇴했지만 IOC가 제시한 의제와 배치되게 올림픽 공동주최 및 단일팀 출전문제를 여전히 주장함으로써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1986년 6월 10-11일에 열린 제3차 회담에서 IOC는 1, 2차 회담 및 남북한과의 개별회의 결과를 토대로 중재안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수락여부를 6월말까지 줄 것을 요청하였다. 중재안의 주요 내용은 결승전을 포함한 양궁과 탁구 경기의 북한 지역 내 개최, 축구예선 1개조 및 사이클 경기의 남북 연결 실시 등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공동주최’ 및 ‘단일팀 구성’ 문제를 거론치 않음으로써 종래의 입장에서 다소 후퇴하는 듯하였으나, 올림픽경기의 남북분산 개최문제, 대회명칭, 조직위원회 등에 대한 종래의 주장을 여전히 되풀이하였다.
제4차 회담은 1987년 7월 14-15일에 개최되었다. 회담이 1년 이상 지연된 것은 IOC 중재안에 대해 북측이 원칙적으로 수락한다고 하면서도 종목의 추가배정 및 경기의 조직·운영 등과 관련한 일련의 요구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제4차 회담에서도 북한은 올림픽경기의 남북한 공동주최 등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남북한 인구비례에 따라 경기종목의 1/3인 8개 종목을 북한지역에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종전보다 경색된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IOC는 일부 종목의 북한 지역 추가 배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수정 중재안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수락여부를 1987년 8월말까지 남북한이 회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KOC는
그러나 북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