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경찰업무에 있어서의 여자경찰 임무 연구
여성은 체력에 있어서 남성에 미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군인과 경찰 등 체력이 위주가 되는 공직에는 여성의 진출을 꺼려하는 것이 당시의 사고였다. 하지만, 여성이 종군하여 상이병을 간호하거나 여성에 대한 신체수색 등 특수한 임무에 종사하는 것이 오히려 남성보다도 우월한 점을 경찰수뇌부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경찰분야에서도 여성이라는 장점을 활용하여 남자 경찰관이 하기 어려운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부단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46년 5월 경무부장 조병옥과 경무부 고문 프롬 대령은 여성피의자의 신체수색이나 여성범죄자의 감시, 불량소년이나 소녀에 대한 조치, 미아와 노인 등 요구호자에 대한 구호조치에 여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애국부인단체를 통하여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 결과 여자경찰이 창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자경찰관을 모집한 것은 1946년 5월 15일이다. 간부 15명과 여경 1기생 64명은 2개월간의 훈련을 이수한 뒤에 7월 16일에 배출되어 전원 중앙에 배치되었다. 이 때 여자경찰과 초대과장에는 간부 중에서 고봉경 총경을 임명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 1월에는 여경의 정원이 500명으로 책정되어(전체 경찰의 약 1.8%) 각 도의 일선 경찰서에 여경이 배치되었으며, 2월 17일에는 수도관구경찰청에 여자경찰서가 창설되어 초대 서장에 양한나 총경이 취임하였다. 이어서 7월 1일에는 부산, 대구, 인천 등지에서 여자경찰서가 신설됨으로써 여자경찰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여경의 전반적인 조직과 임무는 1947년 6월 21일 통첩을 통해 제시되었다. 이에 앞서 1947년 3월 8일 제61호로 경무부장으로부터 민정장관에게 제출된 경무부 사무분장에 근거한 경무부 치안국 여경과의 임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여경 감찰에 관한 사항
② 불량소년, 소녀의 지도 감화 및 취체
③ 부녀자의 풍기 및 수사에 관한 사항
④ 여성범죄 정보수집 및 수사보조에 관한 사항
⑤ 부녀, 소년, 소녀의 유치장 간수에 관한 사항
⑥ 교통사고조사 보조에 관한 사항
여자경찰관 제도의 창설과 교육은 일제의 앞잡이로 불렸던 경찰(순사)들이 대거 퇴진함으로써 생긴 경찰력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광복 이후의 과도적인 사회혼란 가운데서 부녀자나 청소년들의 패륜행위나 범죄에 대한 지도, 보호, 계몽에 있어서도 큰 활약을 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당시 우리 사회의 남존여비사상을 극복하고 여권신장, 남녀평등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이념실천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자경찰관의 활동으로 우리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여성해방이라는 시대 조류에도 편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