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철도관구경찰청의 설립
그동안 운수부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해오던 특수경찰인 운수경찰청을 1946년 3월 5일 국립경찰에 흡수시켜 1개관구로서의 철도관구경찰청을 설립했던 것이다. 초대 청장으로 황희찬이 취임한 철도관구경찰청은 그 산하 교통의 요지에 17개의 철도경찰서를 두었다.
정식명칭 약식호칭
제1구 철도경찰서 개성 철도경찰서
제2구 철도경찰서 경성 철도경찰서
제3구 철도경찰서 청량리 철도경찰서
제4구 철도경찰서 용산 철도경찰서
제5구 철도경찰서 영등포 철도경찰서
제6구 철도경찰서 인천 철도경찰서
제7구 철도경찰서 천안 철도경찰서
제8구 철도경찰서 안동 철도경찰서
제9구 철도경찰서 대전 철도경찰서
제10구 철도경찰서 김천 철도경찰서
제11구 철도경찰서 이리철도경찰서
제12구 철도경찰서 대구 철도경찰서
제13구 철도경찰서 광주 철도경찰서
제14구 철도경찰서 순천 철도경찰서
제15구 철도경찰서 마산 철도경찰서
제16구 철도경찰서 부산 철도경찰서
제17구 철도경찰서 목포 철도경찰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철도관구경찰은 치안국 직할 하에 들어가 보안과의 철도경찰대로 개편되었다.
6.25전쟁을 전후한 당시의 철도 치안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폭도들의 터널, 철교 등 철도시설물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열차운행이 대폭 감소된 반면, 수백만의 피난민, 군중과 열차 승객을 대상으로 한 잡상인들의 범람으로 열차 내는 항상 입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 틈을 타서 절도와 소매치기가 날뛰게 되어 철도경찰대의 임무는 더욱 가중되었다.
당시의 철도경찰대 주요 임무는 ① 철도 주요시설물의 감시와 경비, ② 열차 내의 순찰로 범죄의 예방, ③ 열차 내의 요구호자 응급치료와 후송, ④ 수일간 결식한 기아여행자나 곤경에 빠진 군경유가족에 대한 급식과 기타의 편의 제공 등이었다.
6.25의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된 1955년 10월 3일에 철도경찰은 완전 해체되어 약 8여년간의 활동을 끝맺었다.
민주경찰로의 전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초 작업과 제도의 확충으로 이어졌다. 일제시대와는 달리 경찰의 업무도 자연히 다양해졌다. 따라서 현존하는 경찰제도와 함께 다양한 요구를 수행해낼 수 있는 특수경찰제도가 필요하였다. 철도경찰 역시 이러한 특수경찰의 하나로 발족되었다. 이러한 철도경찰의 권한은 일반경찰과 같으나 다만 그 임무에 있어서 철도의 공안에만 관계하고 있었다. 철도경찰은 열차에 승무하면서 철도 상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법적 요소의 단속과 예방, 그리고 철도를 비롯하여 교량, 터널, 수송물, 각종 시설물 및 철도 장비에 대한 보호와 관찰 임무를 띠고 있어서 오늘날의 특별사법경찰관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