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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남북체육실무자회담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62년 6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59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1964년 동경올림픽대회에 남북한이 단일 팀으로 참가할 것을 권고함에 따라 1963년 1월 24일 IOC 주재로 남북 체육실무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추진경과
이 회담은 국제기구가 중재하는 틀 내에서의 접촉이었던 만큼 남북 간의 직접 대화라고 보기 어렵고 또 당국 간의 대화도 아니었지만,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대표들이 마주 앉아 의견교환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북체육회담은 1979년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경기대회, 1988년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와 관련해서 여러 차례 개최되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결렬되었다. 그리고 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체육회담이 개최되어 1991년에 개최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2000년 이후에 체육회담이 다시 활기를 띠었으나 남북 간 체육교류에 대한 합의는 대부분 남북장관급회담이나 특사 회담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남북 간에 큰 틀에서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 해당 실무접촉에서 이를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세부문제를 논의하였다. 최근에 들어와서 2008년 3월 제주도에서 개최한 아시아 레슬링대회에 북한팀이 참가한 것을 끝으로 남북한 간 체육교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용
1) 1960년대~1970년대
1962년 6월 제59차 모스크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1964년 동경올림픽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참가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하였다. 북한은 이에 근거하여 남북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들 간에 체육회담을 갖자고 7월 28일 제의해왔다. 이에 따라 1962년 12월 로잔과 홍콩에서 3차례에 걸쳐 남북 체육실무자 접촉을 가지고 1963년 1월 24일 IOC 주재로 남북체육실무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단가는 ‘아리랑’으로 한다는 것과 단장과 종목별 지도자의 임명 방법 등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뒤 5월 17일부터 홍콩에서 회담이 속개되어 전 종목에 걸쳐 선발전 실시, 경비 각기 부담 등 부분적 사항에 의견이 접근되기도 하였으나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그 후 1979년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진행되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북한 측이 2월 20일 남북 탁구협회 간에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해왔다. 이에 따라 대한탁구협회와 북한탁구협회 간에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은 2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네 차례 진행되었다. 우리 측은 단일팀 구성 여부를 떠나서 우리 측 선수단의 대회 참가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달리, 북한 측은 단일팀을 구성문제부터 먼저 합의하자고 고집하였다. 북한 측은 단일팀을 명분으로 한국선수단의 대회 참가 기득권을 무시하고 평양대회 참가를 저지하려는 데 목적을 둠으로써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유린하였다. 결국 양측이 3월 12일 결렬선언을 함으로써 단일팀 구성도 합의되지 못했고 한국선수단의 참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2) 1980년대~1990년대
①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경기대회
1983년 10월 북한이 저지른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북한은 1984년 3월 30일 제23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경기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를 협의하자며 남북체육회담을 제의해왔다. 대한체육회는 로스엔젤레스 올림픽대회 참가선수 명단 제출 마감일이 불과 2개월 남은 시점에서 단일팀 구성문제 협의는 기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없었지만, 이를 남북 간 체육교류의 계기로 삼기 위해 동의함으로써 1984년 4월 9일 첫 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웅산 테러사건과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에 대한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 회담이 계속 공전되었다. 북한 측이 전제조건을 내걸고 4차 회담 개최를 거부함으로써 이 회담은 3차 회담으로 끝났으며, 북한 측은 6월 2일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경기대회 불참 선언을 하였다.


②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1985년 2월 1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집행위원회 결정사항으로 남북체육회담 개최문제를 남북한에 각기 제의해왔다. 이에 따라 IOC 주재 하에 1985년 10월 8일부터 1987년 7월 15일까지 로잔에서 4차례 개최되었다. 북한 측은 기본적으로 제24회 올림픽대회는 남북한이 공동개최하고 경기종목을 각각 절반씩 나누어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 측은 개최지를 서울로 정한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의 결정사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일부 종목의 북한 지역 개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


IOC측은 탁구, 양궁, 여자배구와 축구예선 1개 조, 사이클 남자 개인 도로경기를 북한 측이 조직하는 중재안을 제시 하였으나, 북한 측은 그들의 공동주최안과 거리가 멀다며 시간만 지연시켰다. 종국에는 초청장이 발송된 후인 10월 23일 회담의 중단을 선언하였고, 1988년 1월 12일에는 올림픽대회에 불참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③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서울 올림픽대회가 끝난 후 1988년 12월 21일 북한 측은 1990년 9월에 개최되는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하자며 남북체육회담을 제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은 1989년 3월 9일부터 1990년 2월 7일까지 9차례에 걸쳐 회담을 진행하여 단일팀의 호칭(코리아), 단기(흰색 바탕에 하늘색 우리나라 지도), 단가(1920년대 부르던 아리랑), 선수선발 등 10개 항의 기본사항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우리 측이 합의사항의 이행보장 장치를 요구한 것에 대하여 북한 측은 먼저 절대로 개별 팀으로 출전하지 않을 것을 천명해야 회담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하여 결렬되었다. 북한 측은 우리 선수단의 출전을 막아 대중국 접근 가능성을 차단하고 북방정책을 견제하는 한편, 우리 내부에 통일문제를 둘러싼 분란을 확대시키고 대한민국의 유엔 단독 가입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등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었다.


④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 남북한 체육장관 간에 접촉이 이루어져 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 대회가 열렸다. 이를 계기로 우리 측의 정동성 체육청소년부장관과 북한 측의 김유순 국가체육위원장은 회담을 갖고 10월 25일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국제경기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 및 남북 체육교류 문제를 협의하는 체육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11월 29일부터 1991년 2월 12일까지 4차례 회담이 개최되어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문제를 완전히 타결하였다. 그 결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이 국제경기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1991년 4월 24일~5월 6일에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 단체전 우승을 했고, 6월 5일~17일에 열린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 전적을 올렸다.


3) 2000년대
2000년 이후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성화됨으로써 체육 분야에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국제경기대회에 단일팀 참가와 공동 입장 및 응원이 이루어지고 남북 간에도 축구, 농구, 태권도, 프로권투, 아이스하키 등 다양한 종목에서 교류가 빈번해졌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나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 동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 2008년 아시아 레슬링대회 등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경기대회에 북한 측이 선수단과 응원단을 참가시켰다.


2000년 이후 체육회담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02년 8월 북한 측의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참가를 위한 실무접촉, 2003년 7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를 위한 실무접촉, 2004년 6월 아테네 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을 위한 실무접촉, 2005년 7월 8·15 통일축구경기를 위한 실무접촉, 2005년 1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4차례 개최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 등이 남북한 간에 이루어진 체육회담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경기대회 단일팀 참가는 북한 측이 무조건 동수 구성 원칙을 고집하여 무산되었다.

참고자료
통일부 통일교육원, 《통일문제 이해 2013》, 2013.
통일부 통일교육원, 《남북관계 지식사전》, 2011.
통일부, 《통일백서》, 1995.
통일부, 《남북회담추진경과 3권》, 1994.
통일부, 《민족통일로의 전진》, 1989.
집필자
허문영(통일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5. 11. 25
최종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