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현 적대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이양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7월 16일 맥아더는 “대한민국 육·해·공군의 작전지휘권 이양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요지의 답신을 보냄으로써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되었다.
정전 당시, 한국군 작전지휘권의 계속 이양 여부에 관한 협상 끝에 결국 양국 간에 현 상태를 유지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1954.11.17.)에서 “유엔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권 아래 둔다.”고 규정하여, 유엔군사령관이 지속적으로 한국군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CFC)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부에서 한·미연합사령부로 이관되었다. 이에 따라,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의 당사자로만 기능하게 되고,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방위책임은 한·미연합사령부로 이양되었다. 이후 1987년 8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작전통제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였고, 한·미 양국은 1988년부터 시작된 논의에, 양국 군사당국자들은 전시와 평시의 작전통제권을 분리하는 방안을 도출하였다. 미국은 1990년 2월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1991년 1월 1일 부 이양 방안을 한국측에 전달하였다. 1992년 개최된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의 최세창 국방장관과 미국의 체니 국방장관은 “늦어도 1994년 말 이전까지 한국군 부대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인계”하기로 합의하였다.
국방부는 평시작통제권 환수를 한·미간의 역할조정을 위한 중간단계로 보고,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비하여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유사시 한국 방위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보장한다는 방침아래 1994년 1월에 한·미 공동추진위원회를 공식 발족시켰으며 1994년 9월 23일 양측 추진위원장 간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근거로 권한위임사항을 수정하고, 전략지시 제2호를 새로 작성하여 1994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이병태 국방부장관과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 공동 주재로 개최된 제26차 한·안보협의회의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 합동참모의장이 갖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한국군은 44년 만에 평시작전통제권을 유엔군 사령관으로부터 환수받았다.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전환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1) 1950년 7월 14일,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 이양
(2) 1954년 11월 17일, 작전지휘권을 작전통제권으로 명칭 변경
(3)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 창설, 연합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 이양
(4) 1994년 12월 1일, 한국 합참의장에게 평시작전통제권 전환
(5) 2006년 9월 16일, 한미 정상 전작권 전환 합의
(6) 2007년 2월 23일, 전작권 전환일자 2012년 4월 17일로 합의
(7) 2010년 6월 26일, 전작권 전환 시시 조정 합의
(8) 2014년 10월 23일,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합의
(9) 2017년 6월 30일,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의 조속 추진 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