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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노무수출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해외이주법(법률 제 1030, 1962. 3. 9. 시행)

해외건설촉진법(법률 제 2855, 1975.12.31. 제정)

배경

한국의 노무 수출은 경제발전을 위해 노동자를 해외에 송출하여 국내적으로 고용안정을 꾀하고, 해외 송금을 통해 외화획득을 하는 구조로 도입된 정책이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국내 산업은 저개발과 실업만연 상태였으며, 경제 재건에 필요한 외화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특히,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66)이 해외 수출과 외화 획득을 목표로 추진되면서, 노무 수출을 위한 해외이주법(‘62)의 제정과 송출이 시작되었다.

경과

노무수출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1960년대 해외이주법은 한국의 이민은 물론 노무수출 정책의 법제였다. ‘63년 독일과의 협약으로 광부와 간호사가 파견되고, ‘64년부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미군의 군납 형태로 해외건설에 따른 노무송출이 이어졌다. ’731차 오일 쇼크와 ’75년 베트남전 종전은 노무수출의 대상지역을 중동으로 옮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중동특수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해외건설의 활성화와 이에 동반된 노무수출이 이어졌다. ‘75년 해외건설촉진법이 제정되고 노무수출은 80년대 말까지 지속된다.

내용

광부, 간호사, 병아리감별사 등 60년대 한국의 노무수출은 단기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에 영주하면서 이민의 형태로 체류하게 된다. 그러나, 70년대 중동특수로 시작된 노무수출은 주로 1년 단위의 비정규직 단기순환원칙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과 임금 격차가 3~5배 넘게 발생하면서, 가난한 기능공들이 베트남과 중동 지역의 건설지역에 투입되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부족했던 도로,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한 중동국가들에 한국정부가 호응한 것이다.

‘75년 해외건설촉진법을 계기로, 정부는 중동지역 특수를 담당할 제도화를 시작되었다. ’78년 노동청은 증가하는 해외 노동인력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해외근로국을 설치하였다. ‘76년 해외건설 토건업체와 용역업체로 구성된 해외건설협회가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또한, 3백만 달러 이상 수출하는 회사는 의무적으로 해외 지사를 설치해야해서, 중동건설을 담당하는 지사가 영국 런던 중심으로 만들어져 영국 이민사회를 새롭게 하였다. 70년대 중반부터 증가한 중동 노무수출은 ‘8217만여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었다

노무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화는 한국의 경제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근로자들이 송금한 돈은 가계 경제와 국내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https://www.law.go.kr/)

김보현, 개발연대 중동건설현장 취업자의 경제와 정치:돈과 노동, 조국과 가정, 사회와역사114, 2017.

조수종, 중동건설수출에 대한 재조명, 한국중동학회논총8, 1988.

이진영, 런던의 코리아타운: 형성, 구조, 문화, 재외한인연구27. 2012.

해외건설협회 편, 󰡔해외건설 취업자의 수기󰡕, 일간내외경제·코리아헤럴드.1979.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

집필자
이진영(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24. 12. 24
최종 주제 수정